‘이제 그만’ 멈춤의 미덕이 선물하는 삶의 완성
본문사설.칼럼칼럼‘이제 그만’ 멈춤의 미덕이 선물하는 삶의 완성수정 2026-07-30 19:00펼침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대중의 열등감과 불안을 양분으로 암세포처럼 무한 확장하는 자본주의를 거스르는 금기어는 ‘멈춤’과 ‘만족’이다.

본문사설.칼럼칼럼‘이제 그만’ 멈춤의 미덕이 선물하는 삶의 완성수정 2026-07-30 19:00펼침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대중의 열등감과 불안을 양분으로 암세포처럼 무한 확장하는 자본주의를 거스르는 금기어는 ‘멈춤’과 ‘만족’이다.
적당히 만족하고 멈추는 법을 아는 이는 열등감과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충만한 삶이란 더 욕망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자기다움이 훼손된다면 ‘이제 그만’이라는 멈춤의 미덕을 발동시키는 것이다.[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14_충만한 죽음게티이미지뱅크 광고삶은 시간이라는 원고지 위에 내 의지와 자유로 써 내려가는 한편의 서사이다.
그리고 죽음은 내 이야기의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하는 서사의 종결이다. 물론 남겨진 이들의 추억 속에서 서사가 재생산될 수는 있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멈추게 된다. 인생에서 죽음이 이야기의 중단이 아닌 온전한 결말이 될 수 있을 때 삶은 완성되고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안타깝게도 내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끝까지 치료 가능성에 매달리다 삶을 정리할 소중한 시간마저 모두 날려 버린다. 결국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본래 모습마저 아득히 잃어버린 채 환자의 서사를 살다가 끝이 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은 다양한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는데, 최종은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마지막 순간 주위의 존경 속에서 ‘자기다움’을 잃지 않을 때 죽음은 완성된다. 나는 이 순간을 ‘충만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면의 존엄과 외부의 존경이 충만한,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죽음이다. 죽음이 감동이 되는 경험은 유한한 우리 삶의 궁극적 의미를 되새기는 교훈을 남긴다.광고 안타깝게도 많은 병원 임종은 충만함보다는 억울함이 가득하다.
큰 성공을 거둔 재력가도, 충분한 세월을 누린 노인도 여전히 아쉬움에 사로잡혀 자기다움을 지키는 대신 마지막까지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모색하다 끝을 맺는다. 그러고 보면 체념과 포기는 불가능을 모르는 현대인에게 일종의 금기어이다. 한병철이 책 ‘피로사회’에서 썼듯이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 어딘가에 반드시 기적의 가능성이 존재할 거라 믿으며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훈련한 현대인의 생존 습성이다.
그렇게 불만족과 불안은 늘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고,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다음 선택지가 남아있다는 믿음은 자신에게 ‘이제 그만’이란 말을 건네지 않는 현대인에게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말기에 이르러도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신 요양병원에서 체력을 회복해 다시 신약 임상시험에 도전하겠다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는 긍정성에 응원을 보내지만 두려움을 감춘 현실 부정으로 느껴지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질병으로 중단되는 서사는 양과 질 모두에서 불만족스럽지만, 애초에 모든 조건이 충족된 죽음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결국 무작정 죽음을 부정하게 되면 잘 살아왔던 지난 시간까지 부정당하는 결말을 마주하게 된다. 광고광고 때로는 환자보다 가족들이 마무리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한 병에 걸리거나 노인이 되면 아이 취급을 하며 가족들이 주인공의 역할을 빼앗아 서사의 점령군이 된다. 나는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끌고 병원을 옮겨가며 2차 소견을 타진하는 가족들을 매일 만난다. 환자가 그만 멈추겠다 말하면 오히려 약한 소리 말라며 타박한다.
환자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얘기를 꺼냈다가 치료 의지를 꺾는다며 원망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다. 좋은 결말은 경쟁하듯 완벽한 조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멈추고 능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 경쟁에 길들어 멈춤을 잊어버린 우리는 자기다움의 충만함 대신 생존 실패로 초라하게 삶을 마무리 당한다.
자기다움을 소외시킨 삶의 방식은 고스란히 죽음의 모습까지 결정한다. 어릴 때는 사교육 학원 앞에 줄을 서고, 성인이 되어서는 대기업에 줄을 서고, 노화와 질병을 겪는 나이가 되면 대형병원 앞에 줄을 선다. 그 마지막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 같은 병원 임종이다.
이런 죽음은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 얽매여 사는 내게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과 티브이(TV)에 넘쳐나는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과시는 우리를 열등감으로 밀어 넣는다. 반복되는 노출 속에 그들을 흉내 내지 않으면 열등해질 것 같아 몹시 불안하다.
그래서 대중의 열등감과 불안을 양분으로 암세포처럼 무한 확장하는 자본주의를 거스르는 금기어는 ‘멈춤’과 ‘만족’이다. 적당히 만족하고 멈추는 법을 아는 이는 열등감과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충만한 삶이란 더 욕망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자기다움이 훼손된다면 ‘이제 그만’이라는 멈춤의 미덕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이제 그만’을 모르는 가능성의 노예가 되면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뒤에도 만족하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없음에 억울해한다.광고 우리는 흔히 생물학적 또는 인구학적 평균을 잣대로 충분함을 평가한다. 하지만 삶의 만족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평균 이상의 기회를 누려도 아쉬움과 억울함이 늘 남는다.
더러운 해골 물도 감사하게 마시면 생명수 같다는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 도리처럼, 결국은 충분한 만족이란 평균의 달성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감정이다. 아쉬움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충만에 이를 수 없고, 아쉬움 대신 감사를 선택하면 죽음 앞에서도 충만에 이를 수 있게 된다. 호스피스 의사로서 십수년간 쳇바퀴처럼 죽음을 마주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충만함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 예로 시한부의 삶을 충만함으로 완성시킨 한 남자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한 남자가 친목단체 회원들 앞에서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모임의 번창을 기원하는 건배사에 곁들여 폭탄 고백을 했다.
전날 서울의 대학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순간 좌중은 숙연해졌고 몇몇은 놀라 탄식을 했다. 완치는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전하며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삶을 잘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미혼의 외동딸이 있었다. “소원”이라는 가족의 간청과 주변의 권유에 한차례 항암 주사를 투여했는데 오히려 부작용으로 죽다 살아났다. 남은 삶을 미련에 이끌려 무의미한 치료에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시켰다.
그날 이후 가족들과 캠핑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았다. 딸은 바로 휴직하고 아버지의 도전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내 곧 위기가 찾아왔다.
점점 살이 빠져 기력이 떨어지고 복수까지 차올라 더는 외부 활동이 어려워졌다. 이때 가정형 호스피스를 하고 있던 나와 연결이 되었다. 나는 매주 수요일 복수천자를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고 마치 산속 옹달샘 물처럼 쪼르르륵 떨어지는 복수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방문 때마다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며 옷장을 정리하듯 하나씩 정리해 갔다. 아쉬운 것도 많았지만 아내와 딸 덕분에 차고 넘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서 엷은 웃음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그의 옆에서 가족들 그 누구도 침울해하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웃음꽃이 피었고, 농담과 장난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4기 췌장암 진단 후 정확히 3개월을 살았다. 그의 장례를 치른 뒤 아내와 딸은 내 진료실을 찾아 감사를 전했다.
딸은 아버지의 추모 영상을 만들었다며 유튜브 주소를 알려주었다. 영상에는 수요일 방문 외에 내가 모르던 그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가 항암치료를 선택했더라면 몇개월을 더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말은 앞서 말한 흔한 병원 임종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먹지 못해 영양제로 연명하고, 장폐색으로 반복되는 구토에 콧줄이 달리고, 극심한 통증에 모르핀 주사가 밤낮으로 투여되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죽음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복수 때문에 힘들었을 뿐 마지막까지 잘 먹었고, 통증도 없었다.
딸의 추모 영상 속 그는 임종 일주일 전까지 트로트를 부르며 춤을 췄고, 대게를 사 와 최후의 만찬을 열었고, 임종 이틀 전에는 친구들을 불러 작별식도 하였다. 나는 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였는데, 친구들이 달려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가 우울감에 힘들었을 때 가정형 호스피스팀이 때마침 방문해 죽음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그 후 친구가 웃음을 되찾았다고 했다.
드물지만 죽음 앞에서 ‘자기다움’을 완성해 자신과 가족, 나아가 의료진에게까지 충만함을 누리게 하는 이들이 있다. 내 삶, 아니 내 죽음의 목표이다.광고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한겨레신문 신청하기오늘도 진실 보도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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